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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게임업계의 ‘페미니즘 사상검증’

이종임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문화연대 집행위원


온라인 PC게임 ‘트리 오브 세이비어’(Tree of Savior)의 원화 작가인 일러스트레이터가 메갈 트위터 이용자로 의심된다는 게임 이용자의 항의로 커뮤니티 내부에서 문제가 커지자, 지난 3월26일 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본인의 SNS 계정에 직접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사과문을 올린 뒤에도 게임 이용자의 항의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자 IMC게임즈 대표는 일러스트레이터와 면담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공지글을 올리기 에 이른다. ‘여성민우회, 페미디아 같은 계정은 왜 팔로했는지’ ‘한남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트윗을 리트윗한 이유가 무엇인지’ ‘과격한 메갈 내용이 들어간 글에 마음에 들어요를 찍은 이유는 무엇인지’를 묻고 답한 내용을 공개했다. 게임업계 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사건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전에는 보이지 않는 국가권력에 의해 대중에 대한 감시가 이뤄졌다면, 지금은 SNS라는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통해 개인이 개인을 감시하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뜻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한민국 국민들은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를 통해 치밀하게 진행된 사상검증이 창작자에게 미친 영향을 확인했다. 당시의 블랙리스트가 정치적이고 국가적 차원의 논리로 진행되었다면, 지금의 게임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상검증은 더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SNS 내용이 특정 시각과 이익관계라는 기준에 따라 검열되고 있으며, 이제는 한 개인이 한 개인을 검열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논쟁적 단어를 사용하거나 자신의 입장과 반(反)하는 단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IMC게임즈 대표가 회사 직원에게 가한 사상검증 사건은 심각하고 중대한 사건이다. 이러한 사건은 결국 게임업계 종사자들과 게임 이용자들 모두 페미니즘과 관련된 어떤 단어도 언급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규제의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IMC게임즈 대표는 자신이 올린 글에서 한국여성민우회와 페미디아를 문제적으로 언급한 것은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 사과문에는 회사 직원의 사적 행동과 말을 감시한 문제의 심각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과문으로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게임업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상검증 논란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문제 해결 방안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용자를 지닌 게임업계가 보여주는 페미니즘 사상검증과 같은 행보는 이용자들의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다수의 게임 이용자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해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게임산업 내에서 자유로운 정치적 활동과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창작자들의 제작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부기관, 게임업계, 이용자 모두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 경향신문 ] 2018.06.04 21:22  원문보기